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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우리나라 1호 특허자는 독립군이었다

관리자 │ 2021-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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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일시 : 2021년 11월 17일 (수요일)
□ 진행 : 최형진 아나운서
□ 출연 : 박성우 특허청 심사관 


◇ 최형진 아나운서(이하 최형진): 오늘은 순국선열의 날입니다. 일제강점기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저항했던 순국선열의 애국정신과 희생정신을 기리는 날인데요. 독립운동가 중에 자신이 낸 특허로 독립운동 자금을 댔던 분이 있다고 합니다. 그 시대에 특허가 있었다는 것도 놀라운데, 독립운동을 도왔던 특허, 어떤 특허였는지, 그 대단한 일을 해낸 인물은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오늘도 매주 우리의 지식재산권을 지켜주는 박성우 심사관과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 박성우 심사관(이하 박성우): 네, 안녕하십니까.

◇ 최형진: 일제강점기에 특허로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던 분이 계시다고요, 이렇게 훌륭한 분이 누구십니까? 빨리 소개해주세요.

◆ 박성우: 조선왕조 말기인 1869년에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나서 관직에 계시던 정인호 선생이라는 분입니다. 이분은 1899년 31살에 청도군수에 임명되셨는데요, 일본이 지배하는 나라에서 관직은 굴욕이라고 하면서 4달 만에 그만두셨습니다. 


◇ 최형진: 청도군수? 소싸움, 감으로 유명한 경상북도 청도 말인가요?

◆ 박성우: 맞습니다. 대구와 가깝지요, 경상남도와 경계구요. 산이 맑고, 물이 맑고, 사람이 맑다고 해서 삼청의 고장이라고 합니다. 맑을 청(淸)! 길 도(道)! 청도(淸道)!

◇ 최형진: 청도군수를 관두고 뭘 하셨는데요?

◆ 박성우: 군수직을 그만두고 서울에서 흥인학교를 설립해 청소년교육에 힘썼고, 출판사도 하셨습니다. 말총모자 사업으로 많은 돈을 벌었는데요, 대부분 독립운동 자금으로 지원하셨고요, 안타깝게도 1945년 1월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 최형진: 1945년 1월이면 광복을 불과 7개월 앞두고 돌아가셨네요. 가슴이 아프네요. 그런데 어떻게 말총모자 사업을 하시게 됐어요?

◆ 박성우: 말씀드린 대로 정인호 선생님은 1899년 청도군수를 그만두고 서울 종로에 학교를 설립했습니다. 그러다가 러시아 남진정책 반대세력으로 지목되어 투옥이 됐는데, 용감하게 탈옥을 하셨어요. 그리고는 중국 상하이로 망명을 가서 중서대학에서 4년 동안 공부를 합니다. 당시에 상하이에는 외국인들이 많았는데 그분들이 중절모 같은 모자를 쓰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래서 질 좋은 모자를 만들어 팔면 큰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우연히 말총으로 만드는 우리 전통 갓이 번쩍 떠올랐다고 합니다. 당시에 그 사람들이 쓰는 모자는 대부분 천으로 되어 있었거든요. 말총을 재료로 튼튼하고, 실용적인 모자를 만들면 인기를 끌 것이라는 확신으로, ‘세계인의 머리에 말총 모자를 씌우고 말겠다.’는 결심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사업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 최형진: 당시 시대 상황을 봤을 때는 아주 좋은 아이디어 같은데요, 우선 사업이 잘 됐는지 궁금한데요?

◆ 박성우: 그럼요. 말총모자는 1907년 4월부터 생산을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인기상품으로 자리를 잡았고요. 일본, 중국, 미국으로 수출까지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수익금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지원을 했고요.

◇ 최형진: 그럼 특허는 어떻게 내게 된 건가요?

◆ 박성우: 예리한 질문을 하시네요. 당시에 말총모자가 불티나게 팔리니까 짝퉁 말총모자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일본인들이 유사품을 많이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것 때문에 정인호 선생은 특허를 냈고, 신문광고에 비둘기 형상의 상표까지 사용을 했다고 합니다. 요즘으로 치면 특허등록을 받고 브랜드까지 만들어서 제대로 지식재산권을 보호하신 거죠.

◇ 최형진: 그때도 특허가 있었다는 게 신기한데요?

◆ 박성우: 정인호 선생이 말총모자 판매를 시작했던 1907년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특허제도가 없었습니다. 1년이 지난 1908년 8월 16일부터 일본 통감부 한국 특허령이 시행되면서 우리나라에 현대적인 특허가 도입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인호 선생은 일본 통감부 칙령 196호로 한국특허령이 처음으로 공포·시행됨과 동시에 특허를 출원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1909년 8월 19일자로 말총모자의 특허등록을 받은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 최형진: 그럼 이분이 우리나라 최초로 특허를 받은 분이라고 보면 되나요? 그전에 조선 시대에는 특허제도가 없었다는 말씀이네요?

◆ 박성우: 맞습니다. 정인호 선생은 한국인 제1호 특허권자이면서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해외 특허를 받은 분이기도 합니다. 말씀하신대로 조선시대에는 우리나라에 특허제도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고종실록을 보면 1882년 9월, 지석영 선생이 고종황제에게 올린 상소문에 특허제도 도입을 제안한 내용은 있습니다.

◇ 최형진: 지석영 선생이면 종두법을 도입하신 분 말씀하시는 건가요?

◆ 박성우: 맞습니다. 1879년 우리나라 최초로 충청북도 충주시 한마을 어린이 40명에게 우두를 시술해 성공한 분이지요.

◇ 최형진: 지석영 선생이 고종황제에게 특허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올린 상소는 어떤 내용이었습니까? 이유나 필요성에 대한 언급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 박성우: 지석영 선생의 주장을 쉽게 설명을 하면 ‘특허청과 같은 하나의 기관을 만들어서 새로운 기계를 만들고 발명한 사람에게 특허전매권을 줘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야 나라가 발전하고 부강한 국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인데, 백성들의 연구개발 풍토를 확산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고종도 지석영 선생의 주장을 크게 칭찬하면서 의정부에서 검토하여 시행하라고 명령을 내렸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시행은 못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요.

◇ 최형진: 그러네요. 왜 시행되지 못했을까요? 당시에 특허제도를 도입했더라면 개화기에 우리나라 산업발전의 속도도 훨씬 빨라졌을 텐데 안타깝네요. 그리고 제가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요, 말총모자는 어떻게 생긴 건가요? 박물관 같은데 가면 볼 수 있나요?

◆ 박성우: 말총모자는 당시에 대한매일신보에 실렸던 광고를 통해서 확인을 할 수 있는데 다양한 형태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됩니다. 특허청에서 지난 2019년 광복절에 맞춰서 정인호 선생 추모행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정인호 선생이 만든 말총모자 실물을 찾기 위해서 한 달 이상 서울 동묘-황학동 골동품상, 장안평 고미술상, 전주 모자박물관 등에 방문해서 조사를 했습니다. 열심히 찾아봤는데 결과적으로 말총모자를 찾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보가 하나 들어왔는데요.

◇ 최형진: 아. 다행이네요. 누가 어떤 제보를 했습니까?

◆ 박성우: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대학원에서 말총공예기법을 주제로 석사논문을 쓰던 분이 독일 함부르크 민족학박물관이 소장하는 한국문화재에 말총모자가 있다는 제보를 했습니다. 그 학생이 보내온 박물관 도록에 말총모자가 있었는데요, 정인호 선생의 비둘기표 말총모자인지는 확인이 안됐습니다.

◇ 최형진: 그런 사실이 있었군요. 지금이라도 진품 말총모자를 찾았으면 좋겠네요. 우리 청취자 여러분께 긴급 공지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혹시 1907년경에 생산된 말총모자를 가지고 있거나 말총모자에 대해 알고 계시는 분은 특허청이나 YTN 라디오 슬라생으로 제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참고로 말총모자는 말총으로 만들어졌는데 흔히 쓰는 중절모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심사관님, 오늘도 청취자 여러분들에게 공지사항 알려드려야지요.

◆ 박성우: 네. 특허청이 주최하는 가장 큰 행사 중에 하나죠. 우수한 발명특허 제품을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는「대한민국 지식재산대전」이 오는 12월 1일부터 4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됩니다. 애청자 여러분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 최형진: 특허청이 주최하는 행사, 대한민국 지식재산대전이 12월 1일부터 개최됩니다. 애청자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독특허지 기특허지’, 오늘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박성우: 고맙습니다.

YTN 이은지 (yinzhi@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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